어느 날 영국식 블렌디드 티를 마시고 나서 궁금증이 생겼다. 같은 홍차인데 왜 어떤 건 꽃향이 확 퍼지고 어떤 건 흙냄새가 나는 걸까? 답은 발효. 오늘은 그 비밀을 파헤쳐보려고 한다. 홍차 마니아도 이제 막 입문한 사람도 이 글 읽고 나면 '아 이래서 향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게 될 거다.
홍차의 향미,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품종이 다르면 시작이 다르다
모든 홍차는 차나무 잎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질까? 그건 찻잎 자체의 유전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 쉽게 말하면 품종이 달라서다. 특히 찻잎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과 폴리페놀 성분의 조합이 영향을 미친다.
⊙ 아미노산이 많으면 감칠맛, 꽃향기 계열
⊙ 폴리페놀이 많으면 발효 과정 중 테아플라빈과 데아루이딘 생성량 증가 → 쓴맛, 깊은 바디감
⊙ 같은 품종도 교배나 재배 방식에 따라 성분 조성 달라짐
떼루아(Terroir): 찻잎에 새겨진 지리의 기억
와인이나 커피 얘기할 때 많이 나오는 떼루아. 차도 떼루아를 탄다. 해발 고도, 일조량, 토양, 비의 양. 다 홍차 향에 영향을 준다.
지역별 떼루아
특성 | 대표 향미 | |
인도 다즐링 | 고도 높고 서늘함 | 포도향, 장미향, 가벼운 바디감 |
중국 운남 | 온난다습, 묵직한 흙냄새 | 흙내음, 스파이시, 달큰함 |
스리랑카 실론 | 기온 높고 일조량 많음 | 시트러스, 캐러멜, 적당한 바디 |
⊙ 고도가 높을수록 향은 섬세, 바디감은 가벼워짐
⊙ 강우량 많고 토양 비옥한 지역은 흙향·우디함이 강함
⊙ 햇빛 많이 받으면 당화가 활발해져 단맛↑
☞ 한 줄 요약: 같은 찻잎이라도 어디서 자랐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진짜 핵심: 발효가 향을 결정한다
발효가 뭐냐고 묻는다면
'발효'는 엄밀히 말하면 산화다. 찻잎이 산소랑 만나면서 효소가 활성화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화학반응이 맛과 향을 결정짓는다.
⊙ 찻잎 안의 폴리페놀이 산화되며 향미물질 생성
⊙ 데아플라빈, 데아루비딘이라는 두 친구가 핵심
⊙ 산화가 깊어질수록 색은 짙어지고 향은 복잡해진다
⊙ 발효 시간, 온도, 습도, 찻잎 상태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
☞ 찻잎이 산소랑 연애하다 생긴 감정이 향으로 표현된 거다. (물론 과하면 파국 난다.)
발효가 만든 향미 성분 요약
생성 조건 | 기여하는 향미/ 특징 | |
데아플라빈 | 짧은 산화, 고온(카테킨 산화) | 플로럴, 과일향, 산미 |
데아루비딘 | 긴 산화, 고습(카테킨 중합) | 묵직함, 깊이, 단맛 |
산화중합물 | 고온, 장기 발효 시 | 쓴맛, 탁함, 떫음 |
⊙ 데아플라빈이 많으면 향이 가볍고 고급스러움
⊙ 데아루비딘이 많으면 홍차 특유의 깊은 바디감 형성
⊙ 산화중합물은 적당히만 있어야 조화롭다
☞ 이렇게 향미 조합이 생기고 그게 나라별, 브랜드별 개성을 만든다.
지역별 향미 차이, 확실히 보여줄게
이번엔 직접 비교해 보자. 대표적인 홍차 생산지 3곳의 스타일을.
지역 | 기후/토양 | 뱔효 성향 | 특징 |
인도 다즐링 | 고도↑, 서늘, 산성토양 | 얕은 발효 (데아플라빈↑) |
플로럴, 과일향, 밝음 |
중국 운남 | 온난다습,두꺼운 잎 | 중-강한 발효 (데아루이딘↑) |
흙내음, 우디, 묵직함 |
스리랑카 | 해얀가, 따뜻, 습함 | 중간 발효 (데아루이딘↑) |
시트러스, 스파이시 |
⊙ 기후, 토양, 고도가 향미 결정
⊙ 고도 높은 지역은 산미와 플로럴 함
⊙ 습한 지역은 무게감과 진한 바디감
발효 외에 향미에 영향 주는 요소들
위조(시들리기): 발효 준비운동
찻잎을 수확하자마자 말리는 걸 위조라 부른다. 이것도 향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단계다.
⊙ 수분을 70% → 30%까지 날려 효소 반응 유도
⊙ 찻잎 조직이 부드러워져서 산소랑 잘 반응함
⊙ 잘못하면 풋내 난다 (실패 사례 다수)
☞ 위조를 잘해야 발효도 잘 되는 거다. 장르를 바꾸려면 연습부터 잘해야 되는 것처럼.
건조: 멈춤의 미학
발효가 끝나면 딱 멈춰야 한다. 그래서 건조. 보통 열풍기로 100도 이상에서 빠르게 말린다.
⊙ 발효를 멈추고 향을 고정시킴
⊙ 수분 2~3%까지 낮추는 게 이상적
⊙ 과하게 건조하면 탄맛, 덜하면 곰팡이 가능성↑
☞ 이 타이밍 하나로 완성품이 예술이 될지 재앙이 될지가 결정된다.
우리는 법
차를 제대로 우려야 그 향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잘못 우리면 떫고 쓰기만 한 홍차가 된다.
⊙ 물온도 90 ~ 95℃, 우리는 시간 3 ~ 5분
⊙ 너무 뜨거우면 쓴맛 상승, 너무 낮으면 밍밍함
⊙ 차마다 적정 온도와 시간이 다르므로 조정.
자, 여기까지 보면 홍차가 왜 그렇게 다양하게 느껴지는지 감 잡혔을 거다.
홍차 안에는 생화학과 기후, 인간의 손과 시간이 들어 있다. 특히 발효는 단순한 산화 과정이 아니라 향의 편곡 작업이다. 원래 있던 찻잎을 다양한 방법으로 조율하고 꾸며서 하나의 홍차 향미를 만들기 때문이다. 홍차 한 잔은 누군가가 기온과 습도를 계산하고 발효 시간을 조절하고 데아플라빈의 양을 조절한 결과물이다. 정성, 기술, 지식이 모인 하나의 결정체. 다음에 홍차를 마신다면 향을 더 천천히 들이마셔 보자. 아마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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