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이 처음 집에 도착한 날의 기대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직접 추출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생각에 들떠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출한 첫 커피에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너무 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커피가 입안에 들어온 순간 찌푸려지는 입술관 미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꽤 맛있는 커피를 추출해 마시고 있습니다. 그럼,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에스프레소 추출 루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맛있는 커피란
맛있는 커피란 무엇일까요? 사실 맛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삭힌 홍어가 끔찍이 맛이 없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맛있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산미가 있는 커피가 좋은 사람과 고소하거나 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느끼는 맛있는 커피는 다릅니다. 맛있는 커피란 내 입 맛에 잘 맞는 커피입니다.
그런데, 커피에서 느껴지는 산미, 단 맛, 고소한 맛, 쓴 맛은 원두 자체가 가진 본연의 맛과 로스팅 과정에서 생기는 화학적 맛의 조합입니다. 생두 본연이 가진 특징을 살려 로스터가 특정한 방향의 맛을 내도록 로스팅한 것이 원두입니다. 즉, 맛있는 커피란 로스터가 의도한 원두의 맛을 내는 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스터의 의도는 원두 패키지에 나와있는 노트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맛있는 커피란 로스터의 의도와 내 취향이 일치하는 원두로 잘 추출한 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내 커피 취향을 알아보는 것(많은 커피를 마셔보고 취향 찾기)과 원두 패키지의 컵노트들이 잘 드러나도록 커피를 추출하는 게 중요합니다.
※ 맛있는 커피에 대한 다소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에스프레소 추출 루틴
에스프레소 추출 루틴은 크게 8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각 단계에서 필요한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준비
1.1 예열
커피 추출 전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및 포터필터 예열이 필요합니다. 우선 보일러 안의 물을 데워 커피 추출이 가능한 온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열은 충분히 진행하며 포터필터를 끼운 채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머신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그룹헤드 및 포터필터도 예열됩니다.
1.2 물 흘리기
머신 예열이 끝났다는 신호 (대부분 머신은 예열이 완료되어 추출 가능 상태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여줍니다.)가 들어오면 물 흘리기를 진행합니다. 전원을 넣고 예열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보일러에서 그룹헤드까지 이어지는 통로의 물은 아직 데워지지 않았을 확률이 큽니다. 물 흘리기를 통해 덜 데워진 물은 빼내야 합니다. 뜨거운 물이 나와 그룹해드와 포터필터를 충분히 적실 때까지 진행합니다.
머신 전원이 계속 켜져 있는 경우에 E61 등의 그룹헤드를 가진 머신은 물 흘리기를 해야 합니다. 이때는 너무 뜨거워진 체임버 속 물을 흘려보내기 위함입니다. 필요이상의 뜨거운 물은 커피 성분을 지나치게 뽑아내 쓴 맛이 도드라질 수 있습니다.
1.3 포터필터 및 그룹헤드 스크린 청소
포터필터와 그룹헤드 스크린에 남아있는 커피가루와 물기를 제거해야 합니다. 바텀리스 포터필터는 앞쪽뿐만 아니라 뒤쪽까지 물기를 닦아내야 합니다. 스파웃 포터필터는 스파웃 안의 물기를 털어내야 합니다.
포터필터에 남아있는 물기는 커피 바스켓에 담긴 커피가루에 영향을 줍니다. 물기에 닿은 커피 가루는 반응을 먼저 일으키며 커피 성분을 추출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즉, 바스켓 전체 커피 가루에서 골고루 추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반응한 쪽의 커피가루에서 반응이 활발해집니다. 이는 채널링으로 이어지며 커피의 성분을 다 뽑아내지 못하는 원인이 됩니다.
2. 그라인딩
2.1 원두 상태
에스프레소는 신선한 원두를 추출 전 분쇄하는 게 좋습니다. 에스프레소는 펌프로 밀어내는 물과 커피 퍽(바스켓 안의 커피가루)의 저항이 부딪치며 압력이 생성되어 빠르게 커피를 추출하는 커피입니다. 적절한 커피 퍽의 저항이 생기기 위해서는 커피 가루가 물과 만났을 때 가스를 배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래된 원두는 가스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원두 분쇄 직후 다량의 가스가 배출됩니다. 분쇄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두 속 가스는 사라져 줄줄 흐르는 추출이 진행됩니다.
2.2 분쇄도
앞서 말했듯 에스프레소는 커피 퍽의 저항이 중요합니다. 커피 가루가 너무 굵으면(분쇄도가 너무 크면) 저항이 생기지 않습니다. 핸드드립이나 모카포트 추출 시보다 훨씬 가늘게 분쇄해야 합니다. 이후 맛과 추출 양상을 보고 분쇄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3. 도징
3.1 저울 사용
에스프레소는 핸드 드립이나 모카포트로 추출 시 보다 훨씬 원두량에 민감합니다. 0.1g 단위까지 측정되는 저울을 사용해 정확한 양의 원두를 사용해야 합니다.
너무 업도징(바스켓 사이즈보다 많이 담는)이 되지 않았는지 알려면 포터필터 채결화 다시 빼보면 됩니다. 다시 뺐을때 커피 퍽 표면에 스크린에 의해 눌린 흔적이 있으면 바스켓에 너무 커피를 많이 담은 것입니다. 이때 고려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배전도입니다. 같은 무게라도 배전도가 낮을수록 부피가 작아지는 것을 고려해 원두를 사용해야 합니다.
3.2 바스켓 용량
또한 바스켓 사이즈에 맞는 원두량을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 바스켓 사이즈보다 너무 많거나(오버도징) 너무 적은 커피를 사용하면 바스켓에 담긴 커피 가루와 그룹헤드의 스크린 사이에 공간이 너무 적거나 너무 크게 남아 원활한 추출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18g 바스켓에 중강배전 원두 18.5g을 사용했습니다.
4. 레벨링(디스트리뷰팅)
그라인더에서 포터필터에 분쇄된 커피를 받으면 커피가 불균형하게 쌓입니다. 이를 균형 있게 만드는 것을 레벨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평평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커피 가루 속 입자입니다. 물은 밀도가 낮은 곳으로 먼저 흐릅니다. 만약 바스켓 안의 입자들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으면 밀도가 낮은 쪽으로 물이 흐르는 채널링 현상이 일어납니다.
채널링이 일어나면 특정한 곳으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커피 퍽 전체에 물이 골고루 퍼지지 않습니다. 이는 커피 퍽 내에 특정 부위만 과추출이 되고 나머지 부분은 과소 추출이 되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쓴데 밍밍한 커피가 추출되는 원인이 됩니다.
채널링을 방지하기 위해 꼭 해야 할 것이 디스트리뷰팅(분배)입니다. 커피 가루들을 잘 섞어 밀도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것이 침칠봉입니다. 침칠봉을 바스켓 바닥까지 휘저어 균일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이 잘 진행될수록 채널링이 생기지 않습니다.
5. 탬핑
바스켓 내에 커피가 골고루 담겼다면 탬핑을 진행합니다. 탬핑은 탬퍼로 바스켓 속 커피 가루를 누르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려면 커피 퍽에 일정 수준의 저항이 있어야 합니다. 탬퍼로 커피가루를 단단하게 눌러 저항을 만들어야 에스프레소가 추출됩니다.
탬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수평을 맞추는 것입니다. 탬핑이 기울어지면 커피 가루의 한쪽은 높고 다른 쪽은 낮아집니다. 높은 쪽은 밀도가 낮고 낮은 쪽이 밀도가 높게 되어 물이 한쪽으로 치우쳐 흐르게 됩니다. 이 또한 채널링이 생기는 원인이 됩니다.
수평으로 누르기 위해서는 손목에서 팔꿈치까지를 수직으로 만들어 누르는 것이 좋습니다. 엄지와 검지 및 중지로 포터필터와 탬퍼의 가장자리를 누르면서 수평이 맞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탬핑은 한 번에 종료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번 누르면 너무 단단해지거나 커피 퍽 내 균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탬핑은 지긋이 더 이상 눌러지지 않을 때까지 눌러주면서 끝냅니다. 매 추출시마다 압력을 일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압탬퍼를 이용하면 균일한 압력으로 탬핑을 할 수 있습니다.
6. 포터필터 채결
템핑이 완료되면 포터필터를 체결합니다. 이때, 조심스럽게 채결합니다. 너무 팍 채우다가 포터필터가 심하게 흔들리면 기껏 조심히 탬핑한 커피 퍽이 깨질 우려가 있습니다.
7. 추출
추출 시 중요하게 체크해야 하는 것은 추출량과 시간입니다. 이를 위해 0.1g 단위로 측정되는 저울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 가정용 머신의 물받이는 작기 때문에 저울도 작은 사이즈가 필요합니다. 추출은 25~ 30초 사이에 1:2 (투입 원두량:추출량)의 비율로 추출합니다.
기본적으로 추출 시간이 짧으면 분쇄도를 더 가늘게 하거나 원두량을 늘립니다. 반대로 추출시간이 너무 길면 분쇄도를 굵게 하거나 원두량을 줄여야 합니다. (탬핑 강도를 강하게 하거나 가변압 가능한 머신의 경우 압력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래 영상 초반부에 포터필터 외곽부터 커피가 추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탬핑 시 외곽이 덜 눌려 밀도가 낮아 발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뒤 전체적으로 커피가 추출된 후 커피 줄기가 중앙으로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커피 줄기가 한쪽으로 쏠렸다면 그 부분이 밀도가 낮거나 퍽이 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징 후 디스트리뷰팅 시 더 신경 써서 잘 분배해야 됩니다.
8. 정리
추출이 완료되면 컵에 추출된 에스프레소의 4 ~ 6배의 뜨거운 물을 담은 뒤에 추출된 에스프레소를 넣어줍니다. 저는 200g의 물에 에스프레소를 넣었습니다.
추출이 완료된 후에는 스크린에 남아있는 커피 가루들을 털어내야 합니다. 커피 추출 후 바로 하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지금까지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한 에스프레소 추출 루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추출 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데 루틴화 해서 몸에 익히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진행할 수 있습니다. 침칠봉이나 정압탬퍼 등의 도구를 이용하면 좀 더 쉽게 채널링이 없이 맛있는 커피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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