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스타일 소라빵과 쫀득한 쿠키를 사러 킴스델리마켓을 방문했다. 달고 기름진 걸 먹고 나니 자연스럽게 커피가 생각났다. 이미 킴스델리마켓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지만 뭔가 부족했다. 단맛 이후의 입안을 정리해 주는 커피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검색창에 '일산 스페셜티 카페'를 치고 스크롤하다 슬로우 드링크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밤리단길에 잘 어울리는 이름
슬로우 드링크는 일산 밤리단길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동네 수많은 카페 중 묘하게 커피에 진심일 것 같았다. 디저트 사진보다 원두 사진이 먼저 보이는 곳 그리고 메뉴판에서 핸드드립이 가장 앞에 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천천히 마시는 커피'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튀지 않는 외관
네비를 따라 카페로 향하는 길. 카페에 거의 다다르자 왕복 2차선 도로를 만났다. 하지만 양쪽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체감상 1차선.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서로 눈치 싸움을 해야 하는 구조라 운전이 서툰 사람이라면 살짝 긴장할 수도 있다. 다행히 차량 통행이 잦지는 않았다. 카페 앞에는 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날은 운 좋게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외관은 붉은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요즘 유행하는 화이트 톤이나 노출 콘크리트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개성이 강한 외관도 아니다. 큰 간판이 없어 잘 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다행이라면 도로 사정상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게 되어 신경만 쓰면 어닝에 쓰여있는 'SLOW DRINK'가 눈에 들어올 거다.
낮에는 카페 주말 밤에는 바가 되는 공간
문을 열고 들어서면 회색 타일 바닥, 우드 소재의 테이블과 벽면이 만들어내는 조합이 안정적이다. 따뜻하지만 과하게 않다. 차분하지만 차갑지 않다.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가 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구조다. 실제로 슬로우 드링크는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부터 자정까지 칵테일 바를 함께 운영한다고 한다. 바텐더가 있는 날에는 운영 시간 외에도 칵테일 주문이 가능하단다.



메뉴판을 보면 어디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판매용 원두들이 진열되어 있다. 하나하나 신경 써서 고른 느낌이다.

음료 메뉴는 핸드드립을 중심으로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이나 일반 음료까지 고루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메뉴판의 구성만 봐도 어디에 집중하는지 보인다. 메뉴의 맨 앞장이 핸드드립이다. 커피에 집중하고 싶은 날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이날의 선택, 바리스타 픽과 일출 블렌딩
이날 우리가 주문한 건 바리스타 Pick으로 소개된 니카라과 베스트 오브 마라고스 3위 엘 파라이소 내추럴과 일출 블렌딩 아이스였다. 바리스타 Pick은 원두 상황에 따라 바뀌는 듯하다.
메뉴판에 로스팅 포인트가 숫자로 적혀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65 - 중약배전 정도였다. 조금 더 다크 한 원두는 #50~#55 수준이었다. 숫자로 표현된 로스팅 포인트 덕분에 커피 성향을 미리 가늠하기 쉬웠다.
니카라과 원두는 발효 향이 꽤 강한 편이라 내추럴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피하는 게 좋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아내는 비교적 부담 없는 일출 블렌딩을 선택했다. 슬로우 드링크를 처음 방문한다면 이 블렌딩이 무난하다는 추천도 함께였다. 이런 설명 방식이 좋았다. 무조건 추천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정보를 준다.
천천히 마시라는 메시지가 담긴 서빙 방식
커피는 직접 서빙된다. 비커에 추출된 커피와 함께 테이스팅용 작은 잔이 하나씩 나온다. 아이스커피는 얼음이 담긴 컵을 핫 커피는 미리 예열된 컵을 따로 내준다. 먼저 작은 잔에 조금 따라 향을 맡고 맛을 본 뒤 취향에 맞게 옮겨 마시라는 구조다. 이 과정 자체가 커피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려주는 듯하다.

니카라과 내추럴, 호불호가 분명한 향미
니카라과 내추럴은 향부터 강렬했다. 발효된 과일 향이 확 올라온다. 아내는 얼굴을 찡그렸고 나는 좋았다. 취향이 갈리는 향이다.
하지만 첫 모금했을 때 생각보다 과일 향이 과하지 않았다. 건자두와 발효된 와인 같은 느낌이 중심을 잡고 뒤쪽으로 약간의 쌉싸름함이 따라왔다.

질감은 묵직하기보다는 차에 가까웠다.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향이 좋은 차를 마시시는 기분에 가깝다. 후미는 깔끔하게 떨어진다. 시간이 지나며 식어갈수록 산미가 조금씩 살아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마시기에 좋은 커피였다.
일출 블렌딩,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선택
일출 블렌딩은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의 특성이 잘 섞여 있다. 건과일과 베리류의 맛이 겹쳐지며 아내는 대추차 같은 느낌이 난다고 했다. 이 커피 역시 무게감보다는 차에 가깝다. 슬로우 드링크의 전반적인 방향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진하고 무거운 커피보다는 차처럼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 그렇다고 연하거나 비어 있는 맛은 아니다. 커피 성분은 충분히 추출되어 있다. 단지 표현 방식이 부드러울 뿐이다.

추출 감각이 좋은 카페
두 잔 모두 공통적으로 뒷맛이 깨끗했다. 마신 뒤 입안에 남는 불편함이 없다. 가격대가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 완성도의 커피라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추출 도구로 하리오 V60 메탈 드리퍼. 판매하는 원두 가격도 200g 기준 1만 원대 초중반부터 2만 원대 초반까지 형성되어 있는 걸 보면 이곳의 강점은 장비나 원두보다 바리스타의 추출 감각에 있는 듯하다.

천천히 마시는 카페
묵직한 바디감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슬로우 드링크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피를 차처럼 즐겨보고 싶은 날, 향과 여운을 중심으로 천천히 마시고 싶은 날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또한 밤리단길이라는 동네와도 잘 어울린다. 빠르게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 여유를 즐기는 공간. 슬로우 드링크는 그런 역할을 하는 카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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