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도다. 녹차도 말차도 아닌 우롱차. 다도라고 하면 뭔가 고요하고 우아하고 뒷짐 지고 고개 끄덕여야 할 것 같지만 그냥 우롱차가 너무 맛있어서 따라 했을 뿐이다. 다도는 아무래도 분위기 반 맛 반인데, 오늘은 맛 위주다. 다도 장비도 챙겼고 물 온도도 쟀다. 결국은 또 뭔가를 샀다.
우롱차, 차계의 애매함 담당
홍차처럼 진하지도 않고 녹차처럼 순하지도 않은 차. 그게 우롱차다. 근데 바로 그 애매함이 좋다. 말하자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있는 조별과제 같은 존재랄까. 귀찮지만 해보면 은근히 재미있고 결과도 나쁘지 않다. 우롱차는 그런 차다. 이 정도면 다도 입문용으로 아주 훌륭하다고 본다. 고급스럽지만 쉽고 느긋한데 어렵지 않다. 내가 구매한 우롱차는 대만 여행 시 구매한 재스민 우롱티. 1회분씩 소분되어 있어 편리하다.
내가 준비한 다도 장비들 (사실 그냥 사고 싶었다 → 다도 세트 자세히 알아보기 )
다도 세트가 꼭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꼭은 아니지만 나한텐 '꼭'이더라. 이유는 단순하다. 예쁘니까. 그리고 뭐든 도구빨이 반이다. 캠핑도 장비 사야 가고 운동도 옷 사야 나가게 되는 법. 다도도 마찬가지다. 우선 이 세 가지만 있어도 된다.
⊙ 다완: 찻잎 넣고 우리는 주전자.
⊙ 숙우(공도배): 찻물 온도 맞추고 차를 옮겨 따르는 중간 그릇. 균일한 맛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한다.
⊙ 찻잔: 작고 예쁜 잔. 손가락 두세 개로 잡는 사이즈.
⊙ 퇴수기: 별도 구매하지 않고 말차 다완을 퇴수기로 사용
다 모아놓으면 그 자체로 한 세트 인테리어가 된다.
우롱차로 다도 따라 하기: (간단 버전)
너무 복잡하면 안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방식은 아주 간단한 축에 속한다. 그래도 그럴듯하다.
물은 90℃ 물을 사용했다. 너무 물온도가 높으면 떫은맛이 많이 날 수 있다.
1. 예열 타임
→ 다완(혹은 개완)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예열한다. 찻잔과 숙우도 같이 데워준다. 별거 아니지만 확실히 차 맛이 달라진다. 웜업 중요하다.
잊지 말고 찻 잔과 공도배도 예열을 하자.
2. 찻잎 투하: 다완에 찻잎을 넣는다. 패키지를 뜯어 바로 넣으면 사진처럼 둥글게 말려있는 찻잎을 볼 수 있다.
3. 첫 우림 = 세척
→ 물 붓고 10초 바로 따라 버린다. 이건 마시는 게 아니라 찻잎 씻는 거다. 왠지 이 순간부터 진짜 다도 하는 느낌이 든다.
별도 퇴수기를 준비하면 바로 버리기 편리하다.
4. 본 우림 (찻잔에 담을 차)
→ 다시 물 붓고 약 40초 기다린다. 그다음 숙우에 붓고 잔에 나눈다. 여기서부터 진짜다. 향이 진하고 목 넘김은 부드럽다. 내가 만든 차 맞나 싶을 정도.
40초 간의 본 우림이 끝나면 찻 잔에 차를 부어준다.
찻잔에 차를 따랐는데 다완에 차가 남았다면 공도배에 부어 더 우러나지 않게 할 수 있다. 너무 많이 우러나면 써지기 때문이다. 공도배에 따라내는 시간은 자기 취향에 맞추면 된다.
찻잔 속 차를 다 마셨다면 공도배에 있던 차를 추가로 부어 마시면 된다.
5.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반복 가능
→ 찻잎은 버리지 않는다. 두 번째는 50초 세 번째는 1분. 시간이 지날수록 차는 색이 짙어진다. 하지만 세 번째 우린 차는 좀 떫었다. 내가 산 우롱차는 두 번까지가 딱 인 듯.
☞ 팁 하나: 다도 중간중간 차포(작은 헝겊)로 물기 닦아주면 괜히 차선생님 된 느낌 난다. 아주 중요함.
순서 시작 시간 |
비고 |
예열 | 다완(개완), 찻잔, 숙우에 뜨거운 물 붓기 |
찻잎 투하 | 다완 속 뜨거운 물(예열용)을 퇴수기에 버린 후 찻잎 넣기 |
00:00 | 첫 우림 다완 속 뜨거운 물 붓고 대기 |
00:10 | 첫 우림 후 바로 퇴수기에 물 버리기(세척용) 이후 다완에 다시 물을 채움 (본 우림) |
00:45 | 본 우림한 차를 찻 잔 (및 숙우에 따르기) 이후 다시 다완에 물을 채움(2차 우림) |
01:40 | 2차 우림한 차를 찻 잔 (및 숙우에 따르기) 이후 다시 다완에 물을 채움(3차 우림) |
02;45 | 3차 우림한 차를 찻 잔 및 숙우에 따르기 |
종류별 우롱차는 다루는 방식도 달라요
종류 | 물온도 | 우림 시간 | 특징 |
가벼운 우롱차 | 85~90℃ | 1 – 2분 | 꽃향기 은은, 마시기 편함 |
중간 발효 우롱차 | 90~95℃ | 2 – 3분 | 향이 강렬, 개성 뚜렷 |
묵직한 우롱차 | 90~95℃ | 2–3분 | 바디감 강함, 진한 느낌 |
⊙ 첫 번째 우림은 짧게 시작(30초 ~ 1분) 해 맛을 보고 이후 10 ~ 30초씩 늘려가자
⊙ 우림 시간이 너무 길면 떫은맛과 쓴맛이 강해질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짧으면 향과 맛이 충분히 우러나지 않는다.
다도는 결국 나를 느리게 만드는 일
찻잎을 우려내면 신기하게도 나도 우러난다. 핸드폰도 안 보고 말도 안 하고 오로지 찻잎만 보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처음엔 그냥 우롱차 마셔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손이 느려지고 마음이 조용해지는 경험이 이 작은 찻잔 속에서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이렇게 힘이 있다는 걸...
다도 세트 사길 잘했다
솔직히 우롱차 맛이 궁금해서 시작한 거였고 그다음엔 다도 세트가 예뻐서 샀다. 근데 해보니까 이것도 나쁘지 않다. 향도 좋고 맛은 따뜻하고 마음은 평온하다. 차를 사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차를 마시는 시간이 좋아서 계속하게 되는 거다. 물론 다음에도 또 뭔가 살 것 같긴 하다. 예쁜 차판이나 개완 같은 거? 아마 곧 장바구니에 들어가겠지. 근데 뭐 어떤가. 어차피 차 마시려고 사는 거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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