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ffee/Vacuum & Aeropress Recipe

에어로프레스 추출 변수 정리: 분쇄도·침출·프레스 압력으로 맛을 안정시키는 방법

by 호기심 대장 (CuriousCat) 2026. 1. 22.

에어로프레스는 하리오 V60 다음으로 손이 자주 가는 추출 도구다. 편해서기도 하지만 이 도구만이 만들어내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하지만 과하지 않고 핸드드립처럼 깔끔하지만 얇지 않다. 종이 필터를 통과한 뒤 남는 정돈된 질감 그리고 향이 한 번에 모여드는 밀도감. 이 조합은 다른 브루잉 도구로는 대체하기가 어렵다. 에어로프레스를 자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긴다. 더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고자 하는 욕심. 그래서 필요했던 건 에어로프레스 추출 변수에 대한 정리였다. 

테이블 위에 에어로프레스가 놓여있다. 체임버, 플린저, 캡 그리고 필터로 결합해제 상태
에어로프레소 구성품

 


에어로프레스의 특징

에어로프레스의 성격을 굳이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클린컵 위에 얹힌 응축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종이 필터 덕분에 탁함은 잘 걸러지지만 침출 기반 추출이 만들어내는 바디와 농도는 살아있다.

테이블에 에어로프레스(왼쪽)과 하리오 V60 드리퍼가 놓여 있다.
에어로프레스와 하리오 V60

 

하리오 V60이 향의 레이어를 길게 펼쳐 보이는 도구라면 에어로프레스는 향을 짧고 또렷하게 모아 준다. 그래서 같은 원두라도 표현 방향이 달라진다. 에어로프레스는 재현성 좋은 도구를 넘어 질감을 설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변수 우선순위

에어로프레스에서 더 좋은 추출 결과를 얻으려면 질감과 밀도를 기준으로 변수를 정리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분쇄도: 질감의 골격을 만든다

분쇄도는 에어로프레스에서 가장 큰 뼈대다. 너무 곱게 가면 질감은 두꺼워지지만 미분이 늘어 탁해지기 쉽다. 반대로 너무 굵으면 향의 밀도가 빠져 얇아진다. 경험상 핸드 드립보다 약간 더 곱게 시작하는 쪽이 균형점을 찾기 쉬웠다.

에어로프레스와 코만단테 그라인더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에어로프레스와 코만단테

 

에어로프레스는 침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분쇄도가 조금 달라도 추출은 되지만 컵의 결은 분명히 달라진다. 분쇄도는 농도보다 질감을 먼저 바꾼다는 점을 기억하면 조정이 쉬워진다.

 

 

침출 시간: 향과 단맛을 모아준다

침출 시간은 향과 단맛의 밀도를 조절하는 손잡이다. 짧으면 밋밋해지고 길면 원두에 따라 끝맛이 거칠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기준점은 2분 전후다. 여기서부터는 30초 단위로 조정하면 된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보다 ‘얼마나 일정하게’다. 침출 시간이 흔들리면 같은 레시피라도 결과가 달라진다.

 

교반과 스월: 균일한 질감을 만든다

에어로프레스에서 교반은 추출량을 늘리는 행위라기보다 컵의 질감을 고르게 만드는 작업이다. 특히 분쇄가 조금 굵거나 도징이 많을 때는 초반 물이 고르게 스며들지 않으면서 맛이 흔들릴 수 있다.

 

이럴 때 강하게 젓기보다는 부드러운 스월이 더 안정적이다. 목표를 ‘섞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고르게 적시는 것’에 두는 게 좋다.

 

프레스 압력: 세게 하지 말고 일정하게

많은 사람이 놓치는 변수지만 프레스 압력은 결과에 꽤 큰 영향을 준다. 예전에는 더 많이 뽑아내겠다는 생각으로 세게 눌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컵은 탁해지고 끝맛이 거칠어졌다.

에어로프레스에 손을 올려 프레스 중인 모습
천천히 누르는게 좋다.

 

에어로프레스에서 프레스는 짜내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추출액을 여과하며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야 한다. 너무 강한 압력으로 밀어내면 미분을 더 많이 통과시킨다. 질감을 무너진다. 200ml 기준으로 약 30초에 걸쳐 부드럽고 일정하게 누르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었다.

 

물 온도: 결의 성격을 바꾼다

라이트 로스팅 된 원두는 물 온도를 올렸을 때 향과 산미가 선명해졌다. 반대로 다크 로스팅된 원두는 온도를 낮췄을 때 거칠 맛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에어로프레스는 짧은 시간 안에 응축감을 만드는 도구라 온도 변화가 질감에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뜸 들이기는 필수가 아니라 옵션이다

에어로프레스 레시피에는 뜸 들이기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침출 기반 도구인 만큼 뜸 들이기가 항상 큰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충분한 침출 시간이 있다면 초반의 영향은 전체 과정에서 희석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뜸 들이기가 필요할 때는 있다. 원두가 매우 신선해서 가스가 많을 때, 분쇄가 굵거나 도징이 많아 슬러리가 빽빽할 때, 초반 교반을 최소화하는 레시피를 쓸 때다. 이런 상황에서는 20~30초 정도의 짧은 뜸 들이기가 전체 추출을 안정시킨다.

 

뜸 들이기를 상시 사용하기보다 필요할 때만 사용하게 편했다.

 

 

내가 정착한 기본 세팅

라이트 로스트 기준으로 가장 자주 쓰는 세팅은 원두 11g, 물 200g이다. 분쇄는 하리오 V60보다 약간 곱게 시작하고 탁함이 느껴지면 한 단계만 굵게 조정한다. 물 온도는 라이트 로스트 기준으로 비교적 높은 쪽이 향의 밀도를 잘 만든다.(93 ~ 95℃)

 

순서

① 먼저 물을 빠르게 부은 어 전체를 충분히 적신다. 그리고 2분 정도 침출한다.

② 2분이 되면 아주 부드럽게 스월을 한 번 한다. 여기서 스월은 ‘강하게 섞기’가 아니라 위에 떠 있는 커피층이 부드럽게 가라앉는 정도면 충분하다.

③ 그다음 20~30초 정도 정돈 시간을 짧게 주고

④ 마지막으로 30초에 걸쳐 부드럽고 일정하게 프레스 한다.

 

앞서 말했듯 뜸 들이기는 원두가 매우 신선하거나, 분쇄가 굵고 도징이 많아서 커피 가루에 물 적심이 불균일할 것 같을 때만 해도 된다. 처음에 물을 소량만 넣고 20~30초 정도 뜸 들이기를 준 뒤 나머지 물을 부어 같은 루틴으로 진행한다.

 

 

상황별 변수 조정

에어로프레스는 변수가 많아 보이지만 맛을 ‘농도/향의 밀도/질감’으로 나눠 보고 조정은 1~2개만 움직인다.

밋밋하고 얇게 느껴질 때

이 경우는 질감의 밀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분쇄를 한 단계 곱게 하거나, 침출 시간을 30초 늘려본다. 또는 스월을 한 번 더 추가해 전체 추출을 고르게 만든다.

 

탁하고 거칠게 느껴질 때

대부분은 프레스 압력에서 온다. 먼저 ‘더 부드럽고 일정하게’ 프레스를 바꿔본다. 그래도 거칠면 분쇄를 한 단계 굵게 하거나 스월을 더 약하게 하고 정돈 시간을 조금 확보한다. 에어로프레스에서 탁함은 생각보다 ‘세게 누르는 습관’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라이트 로스팅 원두인데 향이 둔하고 퍼지지 않을 때

물 온도를 올리거나 침출 시간을 조금 늘리면 향이 더 또렷해질 때가 많다. 라이트 로스트는 에어로프레스에서도 온도의 영향이 비교적 명확하게 느껴진다.

 

다크 로스팅 원두에서 쓴맛과 거친 끝맛이 올라올 때

온도를 낮추고(가능하면 꽤 낮게) 침출 시간을 줄인다. 교반을 줄여 과한 추출을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크 로스트는 에어로프레스에서 응축감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응축이 거칠음으로 변하기도 쉬워서 조정이 중요하다.

 

에어로프레스는 질감을 다루는 도구다

하리오 V60이 맑은 스펙트럼을 다루는 도구라면 에어로프레스는 응축된 스펙트럼을 다루는 도구다. 짧은 시간 안에 향과 바디를 모아내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결을 만든다. 그래서 에어로프레스에서는 레시피보다 변수의 우선순위를 이해하는 게 훨씬 빠르다. 몇 가지 기준만 잡아두면 매번 다른 커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