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산 푸어오버 세트는 예쁘고 만족스러웠지만 저울에 올릴 수가 없었다. 스테이션 다리 구조가 저울보다 넓어서 물 붓는 양 측정이 불가능한 것. 핸드 드립은 저울, 타이머, 온도계 삼박자 모두 필요한데 그중 한 개가 빠지자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노찬영 대표의 저울 없이 드립 하는 법 영상을 보게 됐다. 어쩌면 커피를 너무 숫자로만 내려온 건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그 영상과 자료를 토대로 감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커피를 보는 눈을 기르기
서양식 커피 추출은 수치를 기반으로 한다. 그램 수, 추출 시간 그리고 온도까지 숫자로 쪼개서 측정하고 기록하고 또 조절한다. 하지만 노찬영 대표의 말처럼 동양은 감(感)이 더 익숙하다. 손 감각과 눈으로 보는 움직임 그리고 코로 맡는 향기. 숫자에 의지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꽤 많은 걸 느끼고 있다.
로우키 노찬영 대표의 말 중 가장 와닿았던 건 '저울 없이 커피를 내리면 오히려 커피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 언제 물줄기를 조절해야 하는지 커피가 팽창하는 모습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향이 언제 변하는지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수치에 집중하느라 놓쳐버린 진짜 커피의 얼굴을 드디어 보는 것이다.
부피 기준으로 원두 세팅하기
저울 없이 추출하려면 부피 기준으로 감을 잡아야 한다. 드리퍼에 담기는 원두 양이 똑같은 부피가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반복하면 눈대중으로 똑같은 높이까지 담는 것도 익숙해진다. 이때, 로스팅 정도에 따라 원두의 밀도가 달라 부피는 같아도 그램 수는 약간씩 차이가 난다. (아래 그림처럼 담긴 원두 가루가 드리퍼의 어디까지 찼는지 확인한다. 이 높이가 일정해야 한다.)

로스팅 포인트별 원두량
⊙ 미디엄 라이트 로스팅: 약 21g
⊙ 미디엄 로스팅: 약 20g
⊙ 미디엄 다크 로스팅: 약 19.5g
분쇄 굵기는 표준 드립보다는 조금 굵은 1000㎛ 정도. 물의 양은 컵 눈금이나 서버 눈금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새로 산 드립 세트 서버엔 눈금이 없다. 컵의 100ml 되는 곳에 표시를 하거나 추출된 양은 저울로 재야 했다.
저울 없이 핸드드립하는 구체적인 방법
이제 실전이다. 커피를 감각으로 추출한다는 건 이런 식이다.
① 뜸 들이기
⊙ 린싱은 생략. 바로 시작한다.
⊙ 물은 천천히, 중심부터 원을 그리며 붓는다.

⊙ 커피빵이 부풀어 오르는 모양과 필터에 커피 추출액이 퍼지는 모습을 관찰
- 커피층이 매끄럽게 부풀어 오르면 OK.
- 거칠거나 뻣뻣하게 보이면 물이 부족한 것.

② 1차 본 추출
⊙ 커피빵이 팽창하다 멈추고 살짝 꺼지기 시작할 때쯤 (뜸 들이기 시작 후 30~40초쯤 후) 1차 푸어 시작.
⊙ 중심에서 원을 그리며 안쪽→바깥쪽→다시 안쪽.
⊙ 너무 바깥까진 붓지 않는다.
⊙ 물줄기는 최대한 얇고 천천히..
※ 물이 넘칠 것 같다는 감이 들면 푸어를 멈춘다.

③ 2차 이후 본 추출
⊙ 서버로 떨어지는 커피가 선 → 점으로 바뀌는 순간, 다시 물을 붓는다.


⊙ '물이 넘칠 것 같다'는 감이 오면 멈춘다.

⊙ 물이 넘칠 것 같으면 멈추고 추출이 선에서 점으로 변하면 다시 붓길 반복한다. 100ml 정도 추출될 때까지 진행. (보통 3 ~4차 추출로 종료됨)

④ 가수(추출 후 희석)
⊙ 서버에 100ml가 모이면 물 100ml를 추가로 붓는다.
→ 아이스커피의 경우 물대신 얼음을 5~7 정도 넣어 커피 온도를 낮춘다. 이후 얼음이 담긴 컵에 부어주면 된다.

⊙ 총 200ml의 음료가 완성되는 것.
⊙ 이 가수는 맛을 정리해 주고 전체 균형을 잡아준다.

감으로 맛의 밸런스를 맞추는 법
저울 없이 커피를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건 감각의 메모리화다. 즉, 오늘 이 정도 부었을 때 어떤 맛이 났는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나만의 내부 저울이 생긴다. 눈으로 손으로 코로 익힌 감각은 생각보다 빠르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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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커피가 너무 계산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18g, 93도, 2분 30초. 이게 커피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너무 정이 없다. 저울 없이 내리는 커피는 정확하진 않다. 대신 뭔가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조금 어긋남은 있겠지만 그 어긋남 속에 내 손의 감각과 커피의 기분이 만나는 지점이 생긴다. 물론 앞으로도 저울을 많이 사용할 거다. 하지만 가끔은 오직 손끝과 코와 눈으로만 커피를 내리는 즐거움도 즐겨야겠다. 그게 조금 덜 정확하지만 훨씬 더 나다운 커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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